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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역사

문체 반정: 조선의 글쓰기 개혁, 언어의 질서를 바로잡다

by 한유쾌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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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는 글쓰기 방식이 갑자기 바뀌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문체 반정(文體反正)**이다. 당시에는 간결하고 재미있는 글이 유행했지만, 조선 왕 정조(正祖)는 이를 문제 삼으며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정조는 글쓰기 방식에 그렇게 민감했을까? 이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조선 후기의 복잡한 사회와 문화가 보인다.


문체 반정이란?

문체 반정은 "글쓰기 스타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로잡는 운동"이다. 조선 후기에는 **소품체(小品體)**라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유행했다. 소품체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짧고 쉽게 쓸 수 있는 글로,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정조는 이 글쓰기 방식이 조선의 전통과 유교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학자들에게 "우리 조선다운 글쓰기로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이다. 

문체 반정이 왜 일어났을까?

조선 후기에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퍼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천주교(서학)**와 **실학(실생활 중심 학문)**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유교 중심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전통적인 글보다 더 감각적이고 간단한 글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조는 이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너무 가볍고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야 조선의 정체성과 질서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정조가 한 일

정조는 단순히 "글을 이렇게 써라!"라고 말한 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조치를 취했다. 그는 학문 연구의 중심이었던 규장각에서 학자들에게 전통적인 글쓰기 스타일을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또 법전이나 국가 문서를 작성할 때도 전통 문체를 따르도록 했다. 지나치게 간단하거나 가벼운 글을 쓴 학자는 비판받거나 책을 출판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문체반정때 정조는 왕의 상징 일월오병도를 없애고 책거리 병풍을 놓았다고 한다.

문체 반정의 결과

문체 반정 덕분에 조선의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이 어느 정도 복원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운동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던 실학자나 젊은 학자들은 **"글쓰기 자유가 너무 억압된다"**고 불만을 품었다. 이 때문에 문체 반정은 조선 후기 문화와 정치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서양과 비교해보면?

문체 반정은 서양에서 18세기에 유행한 **고전주의(Classicism)**와 비슷하다. 서양에서도 당시 낭만적이고 감정적인 글 대신, 전통적이고 규칙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서양은 미학적 이유가 더 컸던 반면, 조선의 문체 반정은 정치적, 사회적 이유가 더 강했다.


문체 반정은 단순히 글쓰기 방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이 운동은 조선 후기 사람들이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어떻게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지금도 우리는 "올바른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데, 문체 반정은 이런 고민이 옛날에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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